뉴욕의 프로그래머(2007)

뉴욕의 프로그래머

읽게 된 경위

갑자기 여행을 다녀왔다. 퇴사 기념 여행이었다. 여행을 무진장 싫어해서 고등학교 수학여행도 안 갔던 나지만, 퇴사할 거라고 하니 다들 여행을 추천하길래 ‘그 좋다는 여행 뭐가 좋은지 한 번 보자’하는 심경으로 쫓기듯 일주일을 떠났다.

남해를 따라 쏘다닌 터라 출경하고 상경하는 시간이 길었다. 마냥 자는 것도 지쳐서 휴대전화로 전자책을 읽었다. 기술서를 보고 싶었지만 읽고서 바로 이해할 자신이 없었다. 분명 오랜만에 문학 서적을 읽을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문학 서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힘든 것 같고.

소설 겸 개발자 이야기라고 하길래 덥썩 집어 읽었다. 여행 때 틈이 나면 읽기도 했고, 책 자체도 짧아서 여행의 시작과 끝을 이 책과 함께 했다.

그래서 책은 어땠냐면

이 책을 기술서라고 하기도 좀 그런데, 문학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왜 그렇게 느낀 건진 잘 모르겠다. 어쨌든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받아 문학도 기존 틀이 많이 깨졌고, 나도 이를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문학이다, 라고 이야기하긴 힘들 것 같다.

이 책에는 다양한 개발자들이 등장인물로 등장하며, 각각 다른 성격과 코딩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챕터마다 그 스토리를 끌고 가는 주체가 변경되고 각각의 챕터가 연속성을 띄지 않고 종결된다는 점에서 에피소드 형태다. 내용은 대개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것들.

등장인물들은 한 회사에 다닌다. 월가에 제공되는 주식 매수/매도 관련 SW 개발 및 유지보수 업무를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바의 스윙패키지를 이용해 SW을 만드는데, 어… 스윙… 굉장히 오랜만… 게다가 자바 1.4 버전에서 1.5 버전에 추가된 패키지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이 있어서 한편으로 놀랐다. (자바 1.8만 써본 사람) 하기야 이 책이 나온 게 10년도 더 전이니까.

나는 처음 배운 프로그래밍 언어가 자바였다. (국비 출신들이 다 그렇듯) 그래서 책에서 언급된 에러의 내용이라던가 패키지들이 낯익어서 한편으로 ‘내가 아는 것 나왔다’ 같은 재미도 있었다.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개발자의 특징을 엄청 부풀려놓은 형태였다. 통합 개발툴을 사용하지 않는 개발자라던가, 성격이 급해서 에러를 고치다가 더 큰 에러를 만드는 사람이라던가(난 가) 어렵게 쓴 문장은 없어서 쉽고 빠르게 읽기는 좋았는데 개발 분야를 아예 모르는 사람이 보면 재미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지인한테 이거 읽고 있다고 보여주니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소설 내에서 객체지향적 설계, 좋은 코드에 대한 찬양이 엄청 나온다. 그런데 코드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부분은 극히 일부분이고(이 책이 기술서는 아니니까), 그마저도 초반만 자세하고 책 후반부 천재 등장인물들이 나올 때는 그들이 어떻게 코드를 쳤는지에 대한 묘사는 별로 없었다. 발화자가 코드를 보고 느낀 감정을 서술하는데 치중된 문장이 많아 아쉽다.

다 읽고 나서는 저자나 출판사가 이 책의 독자층을 어떻게 설정한 것인지가 궁금했다. 아예 개발 업무에 문외한이면 읽기 힘들 것 같은데, 현업에 계신 분들은 이 책이 재미있을까?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재미 없진 않았는데, 어디서 재미를 느꼈는지 잘 모르겠다.

챕터 시작 전에 유명 개발자의 말이나 챕터 내에서 하고 싶었던 핵심 문단이 인용구로 나오는데, 전자책으로 읽어서 그런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자로 하여금 울림을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잘 쓴 글이라면 문단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독자가 알아서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